2022. 5. 13. 12:16ㆍ역사
위대한 철학의 탄생
크라테스와 메가라의 철학자 스틸포 밑에서 공부를 마친 후. 제논은 아고라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즐비한 가게들 사이에서 물건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토론했고, 격동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내면의 평화를 찾는 삶의 철학을 제시했다. 디오게네스는 삶을 사색적인 삶과 행동하는 삶, 그리고 합리적인 삶의 세 단계로 나누었는데, 궁극적으로 스토아학파는 합리적인 삶을 추구한다. 사색과 행동이라는 본성을 따르다 보면, 우리 삶은 자연스레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제논은 똑똑하고 재치 있는 스승이었다. 어느 날, 제논은 한 남자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그 남자는 평소에 음식을 너무 허겁지겁 먹어서, 손님 몫의 음식도 안 남기기로 유명했다. 그와의 식사 자리에서, 제논은 혼자서 생선을 다 해치울 것처럼 접시를 들어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놀란 듯 쳐다보자, 제논은 이렇게 답했다. "당신은 하루도 내 식탐을 견디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어린 제자가 너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으면, 제논은 그의 머리카락을 깎게 해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게끔 했다. 한 번은 로도스섬에서 훤칠하고 지갑도 두둑한 귀족 소년이 제논의 가르침을 받으러 온 적이 있었다. 마치 젊은 시절 제논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스승은 옷이 더러워질 줄 알면서도 먼지로 뒤덮인 벤치에 앉게 하고, 구걸하는 사람의 어깨를 주무르게 시켰다. 크라테스가 제논에게 렌틸콩 수프를 들려 도시로 보낸 것과 같은 뜻이었다. 하지만 굴욕을 견뎌내고 가르침을 받은 제논과 달리, 소년은 아테네를 떠나버린다. 제논은 배움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자만심이라고 여겼다.
제논은 아고라 북동쪽의 스토아 포이킬레, 즉 채색 주랑(벽 없이 기둥만 줄지어 나란히 서 있는 복도) 현관에서 제자들과 토론했다. 기원전 5세기에 세워진 이 유적은 무려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터가 남아 있다. 제논의 추종자들은 '제노니안'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그는 끝내 철학 학파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자신이 추구한 지혜의 보편성과 겸손함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제논의 제자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받던 근거지이자, 정신적인 고향을 학파 이름으로 선택했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의 면모와 딱 들어맞는 일이었다. 주랑은 종탑이나 무대도 아니고 창문이 없는 강의실도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구조를 지녔기에, 생각과 성찰을 위한 장소이자 우정과 토론을 나누는 장소로 손색이 없었다.
제논은 제자들이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길 원했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자존심만 앞세우는 학생은 참지 못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오직 배울 준비가 되어 있고 의지를 갖춘 사람들만 제논의 주랑에서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전해지는 제논의 저서는 단 한편도 없다. 그의 대표작이자 플라톤의 저작과 동명의 책인 <국가>조차도 전해지지 않는다. 남아 있는 건 그의 책을 읽은 사람이 쓴 요약본뿐이다. 거기에 따르면 초기 스토아학파 철학은 놀랍도록 유토피아적이다. "공동체와 정당은 하나입니다. 공동의 밭과 목초지에서 나는 음식을 함께 먹고 공유하는 무리처럼, 우리는 모두 서민의 삶을 살고 일반적인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후대의 스토아학파는 그런 유토피아적인 내용은 버리고 더 실용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제논은 교육, 인간 본성, 의무, 감정, 법률, 이성에 관해 글을 썼고, <호메로스의 문제점>이라는 유명한 수필을 쓰기도 했다. <세상에 대하여>는 과연 무슨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그가 쓴 <크라테스 회고록>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오늘날 제논의 글은 단편적으로만 전해진다. 하지만 교훈을 얻기에는 그 짧은 글로도 충분하다.
제논은 인간 본성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삶의 목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덕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를 덕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또 이런 명언도 남겼다."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귀는 두 개, 입은 한 개를 만든 이유가 있다." "혀로 여행하는 것 보다 발로 여행하는 것이 좋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직접 경험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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