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전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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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 I
무지한 십자군, 형제에게 칼을 겨누다 9.11 테러는 십자군과의 싸움 (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과 (메카의) 성스러운 사원을 그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군대(십자군)가 두 번 다시 우리를 위협할 수 없도록 그들을 이슬람 땅에서 내쫓아야 한다. 한때 다마스쿠스(현재 시리아의 수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예부터 동서 교통의 요지로 번영하였음)와 이집트는 물론, 다른 지역까지 넘볼 정도로 막강했던 프랑크인(게르만 족 가운데 서게르만 계통에 속하는 여러 부족을 함께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십자군을 의미함)들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쫓겨났다. 신이여,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시길! 성지 예루살렘 탈환과 십자군, 이교도와의 성전, 두 글의 분위기는 사뭇 ..
2022.05.26 -
십자군 전쟁 그 이후
시대속으로-십자군 전쟁이 남긴 것 최근 학계에서는 십자군이라는 용어를 단순히 '성지 회복'을 넘어서 유럽 기독교와 이교도와의 분쟁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쓰는 경향이 있다. 13세기에 이단, 교회의 적에 대한 십자군 운동은 성지 회복을 위한 원정만큼이나 빈번하게 일어났다. 당시 에스파냐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려는 '레콘키스타'운동은 기독교들 사이에서 성지 회복과 같은 거룩한 전쟁으로 여겨졌다. 십자군 전쟁 결과, 유럽은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먼저 많은 귀족과 기사들이 전사하여 수가 줄어들었다. 이는 왕권 강화로 이어져서 근대 국가 형성에 기여했다. 반면, 잇따른 원정의 실패로 교황의 권위는 크게 떨어졌다. 1309년에는 교황이 프랑스 왕에게 쫓겨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