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토마스 아퀴나스

2022. 4. 27. 20:32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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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

 

끊임없는 논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사상은 한 명의 독창적인 사상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철학보다 훨씬 파급력이 있다.

계속된 공격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내세우는 사상이 설득력 있다는 반증이 될뿐더러, 공격과 방어 가운데서 이론은 오류를 수정해 가며 더욱더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아퀴나스의 사상은 끝없는 반박과 재반작의 산물이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는 (신학대전)과 함께 (대 이교도 대전)이 꼽힌다. 두 작품은 비기독교인들이 던질 수 있는 모든 논박에 대해 답할 수 있을만큼 엄청난 분량을 담고 있다.

강한 승부사기질과 초인적인 지적 지구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품이다.

 아퀴나스는 '황소'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우직한 학자였다. 한번은 프랑스 왕 루이9세가 그를 잔치에 초대한 적 있었다. 그에게 왕 곁에 앉는 '은전'이 베풀어졌는데도 '벙어리 황소'는 떠들썩한 잔치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탁자를 꽝 내리치더니 "그렇다. 이것으로 마니교는 끝장났다!"고 외쳤다고 한다. 옆에 있던 수도원장이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일깨워 주고 나서야 그는 사색에서 벗어나 눈앞의 현실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아퀴나스의 집중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잘 알려주는 일화다.

 이랬던 그도 말년에 신을 깨닫는 신비로운 체험을 한 후, 자신의 지식은 지푸라기보다도 못하다고 고백하고는 집필 활동을 중단해 버렸다. 이후 그는 명상과 기도 속에서 삶을 보내다가 숨을 거뒀다. 

명철한 이성의 탐구, 그러면서도 신앙과 절대적 진리에 순종하는 사유의 결말, 아퀴나스의 삶은 중세 학자의 전형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내가 한 신비한 체험에 비하면) 지금까지 써 온 모든 것은 한갓 지푸라기처럼 보인다."

-신을 직접 만나는 체험을 한 후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비서에게 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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