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7. 22:11ㆍ역사
시대속으로-십자군 전쟁이 남긴 것

최근 학계에서는 십자군이라는 용어를 단순히 '성지 회복'을 넘어서 유럽 기독교와 이교도와의 분쟁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쓰는 경향이 있다. 13세기에 이단, 교회의 적에 대한 십자군 운동은 성지 회복을 위한 원정만큼이나 빈번하게 일어났다. 당시 에스파냐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려는 '레콘키스타'운동은 기독교들 사이에서 성지 회복과 같은 거룩한 전쟁으로 여겨졌다.
십자군 전쟁 결과, 유럽은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먼저 많은 귀족과 기사들이 전사하여 수가 줄어들었다.
이는 왕권 강화로 이어져서 근대 국가 형성에 기여했다.
반면, 잇따른 원정의 실패로 교황의 권위는 크게 떨어졌다. 1309년에는 교황이 프랑스 왕에게 쫓겨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기는 일까지 생긴다. 그 후 로마교회는 이전의 권력을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십자군 전쟁은 문화와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이슬람권 세계는 성서의 권위에 짓눌려 학문 발전이 정체되어 있던 유럽에 비해 훨씬 발전된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선진 문물이 전쟁과 함께 아랍에서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대수학(algebra), 알코올(alcool), 설탕(sucre)등의 말들은 모두 아랍어에서 왔다. 아랍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철학적으로도 십자군 전쟁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동안 유럽에서는 잊혔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전쟁과 함께 다시 유럽으로 전해 온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에 의해 체계적으로 기독교 신학에 녹아들어, 이후 교회의 위상과 체계를 재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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