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9. 22:06ㆍ역사
왕권신수설 사회계약설
아무리 시대 여건이 뒷받침해 준다 해도 철학이 없다면 혁명은 일어날 수 없다. 철학은 폭동과 혁명을 구분시켜 주는 중요한 잣대다. 이념 없이 폭발한 시위와 반발은 그 순간이 지나면 이내 잠잠해진다. 하지만 철학은 불만에 차 들고일어난 시민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할 지에 대한 로드 맵(앞으로의 계획이나 전략이 담긴 구상도, 청사진)을 제공한다. 그래서 폭력을 새로운 세상을 여는 동력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면 18세기 프랑스를 변혁시킨 철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 학자들은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끼친 사상으로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철학을 꼽는다. 하지만 그 당시 권력자들은 통치의 근거를 이른바 '왕권신수설'에서 찾았다. 왕권신수설의 대표주자 격인 필머(R. Filmer, 1588?~1653)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은 왕이 될 권리를 오직 한 사람에게 부여했다.
그 사람은 바로 아담이다.
아담은 전 인류의 아버지다. 그리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왕은 이 아담의 상속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버지에게 복종하듯 왕에게 복종해야 한다.
왕에 대한 불복종은 신을 공경하지않는 것과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경은 서유럽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왕권신수설은 꽤 설득력이 높은 학설이었다. 하지만 로크는 여기에 '사회계약설'로 맞섰다. 그는 왕이 될 권리는 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국왕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로크는 국왕도 정부도 없었던 '자연상태'를 가정하여, 권력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자연 그대로의 인간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러나 살다 보면 충돌과 다툼은 늘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이를 괴롭힐 때 누군가 이를 막아주지 않는다면 우리네 삶은 이내 폭력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통치자를 세우기로 '계약'을 맺었다. 마치 동네 주민들이 합의 하에 자치회를 구성하듯 그렇게 국왕을 세웠다는 뜻이다.
그런데 만약 통치자가 사람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을 이용하여 착취하고 괴롭힌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이에 대해 로크는 단호하게 말한다. 개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권력자는 폭력을 써서라도 몰아내야 한다고 말이다. 곧 혁명을 일으켜서라도 국민의 뜻을 살릴 수 있는 통치자로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로크의 주장은 권력의 원천이 국민에게 있다는 '국민 주권론'에 힘을 실어 주었다. 게다가 그 당시는 과학의 발달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왕권신수설의 근거가 되는 성경의 권위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을뿐더러 볼테르 같은 인기 작가들도 귀족과 성직자들을 비꼬는 글로 큰 반응을 얻고 있던 시대였다. 그만큼 절대 권력은 기반을 잃어 갔고 대중 사이에서는 특권층에 대한 거부감이 널리 퍼져 있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 제국을 지탱한 국가 철학의 힘 (0) | 2022.05.02 |
---|---|
자본의 멱살을 거머쥔 공산주의 (0) | 2022.05.01 |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준 사상들 (0) | 2022.04.30 |
십자군 전쟁 그 이후 (0) | 2022.04.27 |
인물-토마스 아퀴나스 (0) | 2022.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