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론-제2편(3)

2022. 8. 19. 09:00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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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살의 권리에 대하여

개인에게는 자기의 생명을 처분할 권리가 없는데, 어떻게 자기에게도 없는 이 권리를 개인이 주권자에게 양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의 생명 보존을 위해서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쓸 권리를 가지고 있다. 화재를 피하기 위해 창문에서 뛰어내린 사람에게 자살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또 위험한 줄 알면서도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우 때문에 빠져 죽은 사람에게 자살 죄가 적용된 적이 일찍이 있었던가? 

사회계약은 계약 당사자들의 생명 보존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에게는 수단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 수단에는 다소의 위험과 때로는 상당한 희생도 따른다. 타인의 도움으로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자는, 필요한 경우에는 타인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바칠 줄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시민에게는, 법률이 그로하여금 무릅쓰기를 요구하는 위험에 대하여 불평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 군주가 시민에게 "그대가 죽는 것이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라고 했을 때, 그는 마땅히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현재까지 안전하게 살아온 것이 오직 그와 같은 조건에서였고, 또 그의 생명은 단순히 자연으로부터 받은 선물일 뿐 아니라 국가에 의하여 조건부로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범죄인에게 가해지는 사형도 대개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살인을 한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는 데 동의하는 것은 우리가 그와 같은 살인자에 의하여 희생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 계약을 체결할 때, 우리는 자기의 생명을 처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자기 생명의 안전을 보증하고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계약 당사자들은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이 사형을 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악인들은 그 죄악 때문에 조국에 대한 반역자와 배신자가 된다. 그는 조국의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그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심지어는 조국에 대하여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렇게 되면 국가의 존속은 그 자신의 존속와 양립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어느 한쪽이 멸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죄인을 사형에 처할 때, 우리는 그를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적으로서 처벌하는 것이다. 그 심리와 판결은, 그가 사회계약을 파괴하였고 따라서 이미 구가의 구성원이 아니라는 증명이며 선언이다. 그러나 이런 죄인은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 국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므로 사회계약의 위반자로 추방되거나, 아니면 공공의 적으로 사형에 처해져 국가로부터 제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적은 도덕적 인격이 아니라 단순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권리가 피정복자를 죽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그러나 범죄인의 처벌은 개별적인 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에 찬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처벌은 주권자가 해야할 역할은 아니다. 그것은 주권자가 타인에게 부여할 수는 있으나 직접 행사할 수는 없는 권리이다.

나의 이론은 시종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이를 한꺼번에 설명할 수가 없다. 하기야 형벌이 잦은 것은 항상 정부측이 약하거나 태만하다는 징조이다. 아무리 약한 인간이라도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는 법이다. 살려두면 반드시 해가 될 인물을 제외하고는, 비록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인간을 사형에 처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법률에 따라 재판관이 선고한 형벌로부터 죄인을 사면해 줄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재판관과 법률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 즉 주권자에게만 있다. 이러한 권한도 실제에 있어서는 매우 명확하지 못하고,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도 아주 드물다. 선정이 베풀어지는 국가에서는 형벌도 적은데, 그것은 사면 행위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인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많은 범죄가 행해져도 벌을 받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은 국가가 쇠퇴의 길로 들어섰을 때이다. 로마 공화국에서는, 원로원도 집정관도 사면을 내리려고 한 적은 없다.

인민들조차도, 때로는 그들이 내린 판결을 취소하는 일은 있어도 사면을 내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사면을 자주 내린다는 사실은 머지않아 범죄가 사면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점은 그 누구에게도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펜을 억제하며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이러한 문제는, 이제까지 한 번도 죄를 저지른 적이 없고 따라서 사면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공정한 사람에게 맡겨 토의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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