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30. 08:00ㆍ역사
입법자에 대하여
모든 국민에게 가장 적합한 사회규칙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런 경험이 조금도 없으면서도 인간의 모든 욕정을 잘 알 수 있는 탁월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이 사람은 인간의 본성을 샅샅이 다 알고는 있지만 결코 그 본성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으며, 그의 행복은 우리의 행복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기꺼이 전념하고, 끝으로 시간의 흐름 속에 먼 장래의 영광만을 바라보면서, 한 세기에서 노력한 결과가 다음 세기에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요컨대 인간들에게 법률을 제정해 주는 것은 신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정치가론" 에서 정치가 또는 왕자를 정의하기 위하여, 칼리굴라가 사실문제에 대하여 추론한 것과 같은 방법을 권리 문제에 대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위대한 군주가 그리 흔치 않다는 것이 사실인 것을 보면, 위대한 입법자는 그 얼마나 더 드물 것인가? 군주는 입법자가 정해 준 모형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입법자는 기계를 발명하는 기사이지만 군주는 그 기계를 조립하여 운전하는 직공에 불과하다. "사회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초기에는 공화국의 지배자들이 제도를 만들어 내지만, 그 뒤에는 제도가 공화국의 지배자들을 만들어 낸다."라고 몽테스키외는 말하고 있다.
어떤 인민에게 감히 제도를 만들어 주려고 하는 자는, 모름지기 인간성을 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하고,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완전하고도 고립된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각 개인을 보다 더 큰 전체로 결합하여 거기서 자기의 생명과 존재의 원천을 부여받게 할 수 있어야 하며, 인간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하여 이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받은 독립적이고 육체적인 존재를 부분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로 바꿀 수 있는 능력과 확신을 가져야 한다. 요컨대 그런 사람은 인간으로부터 그 본래의 힘을 제거해 버리고, 그 대신 이제까지 관계없던 어떤 새로운 힘을, 남의 도움 없이는 쓸 수 없는 어떤 힘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본래의 힘이 완전히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새로 얻은 힘은 더욱 커지고 영속적인 것이 되며, 새로운 제도 역시 더욱 확고하고 안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시민이 다른 시민의 도움 없이는 아무런 가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또 전체가 얻은 힘이 모든 개인의 본래적 힘의 총화와 같거나 또는 그보다 크게 되면, 입법은 가능한 최고의 완성점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입법자는 모든 점에서 국가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재능에 있어서 탁월해야 하지만, 그 직무에 있어서도 탁월해야 한다. 그의 직무란 행정권도 아니고 주권도 아니다. 그의 직무는 국가를 조직하는 것이므로, 국가의 기구 안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세계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갖고 있지 않는 특수하고 우월한 기능이다. 왜냐하면, 만약 인간을 지배하는 자가 법률을 지배해서는 안된다고 하면, 법률을 지배하는 자도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법률은 입법자의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어, 종종 입법자의 부정으로 얼룩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의 개인적인 욕망은 필연적으로 그가 만든 법률의 신성을 손상시킬 것이다. 류쿠르고스가 자기의 조국을 위하여 법률을 만들 때, 그는 먼저 왕위에서부터 물러났다. 그리스의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법률의 제정을 외국인에게 의뢰하는 것을 관례로 삼고 있었다. 근대 이탈리아의 여러 공화국도 이 관례를 답습하는 일이 많았다. 즈네브 공화국도 이 관례를 이어받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로마는 그 전성기에 있어서 입법권과 주권이 동일한 몇 사람에 의하여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제정치 아래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죄악상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고, 마침내 로마는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십인관 조차도 자기네 권위만으로 법률을 제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십인관은,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제안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여러분의 동의 없이는 법률로써 통과될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인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 줄 법률의 제정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인민에게 말했다.
그러므로 법률을 기초하는 자는 입법권을 갖지 않으며 가져와서도 안된다. 또 인민 자신도 이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설령 그가 바란다고 하더라도 빼앗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본 계약에 따르면 일반의지만이 개인을 구속 할 수 있고, 또 어떤 특수 의지가 일반의지에 합치되느냐의 여부는 인민의 자유투표에 의하지 않고는 확실히 판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되풀이해도 유익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입법이라는 작업에서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사실이 동시에 발견된다. 하나는 그 작업이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너무나 이룩하기 어렵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권위도 갖지 않은 권위자가 그것을 실행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난점이 있다. 현자들이 통속적인 말 대신에 자기네 말로 일반대중에게 말하고자 할 경우, 일반 대중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상 통속적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상들이 많이 있다. 너무 일반적인 개념이나 너무 고원한 목적은 다 같이 통속적인 말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각 개인은 자기의 개인적인 이익에 직접 관계가 있는 정책 이외에는 어떠한 정책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법률이 때로는 계속 곤란을 강요하지만 결국에는 그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세대의 인민으로 하여금 정치의 건전한 원칙을 이해하고 국시의 기본적 규칙을 따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결과가 원인이 되게 바꾸어 놓을 필요가 있다. 즉 입법제도의 결과로 형성되어야 할 사회정신이 입법제도의 설립에 기여해야 할 것이며, 인간은 법률의 제정에 앞서 법률에 따라 형성되어야 할 이상적인 인간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입법자는 힘도 추론도 사용할 입장이 못되므로, 불가피하게 다른 질서에 속하는 권위, 즉 폭력을 쓰지 않고도 강제할 수 있고 강요하지 않고도 설득할 수 있는 권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모든 시대의 건국 지도자들이 인민들로 하여금 국가의 법률을 자연의 법률처럼 따르게 하기 위하여 천국의 간섭에 의존하고 신의 영광을 떠받든 이유이다. 그들 지도자들은 인민들로 하여금 국가를 형성하는데 있어서도 인간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처럼 신의 권위를 인정하게 함으로써, 인민들이 자진해서 복종하며 공공의 복지라는 굴레를 얌전하게 견디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입법자는 일반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이 숭고한 원리를 신의 권위를 빌어 설명함으로써 인간의 지혜로는 움직 일 수 없는 사람들을 통솔하려고 한다. 그러나 신의 권위를 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또 스스로 신의 대변자라 자칭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쉽사리 믿어주는 것도 아니다. 입법자의 위대한 정신만이 그의 사명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석판에 글을 새기거나, 돈으로 신의 권위를 매수하거나, 어떤 신과 비밀로 대화를 했다고 가장하거나, 새를 훈련시켜 자기 귀에다 속삭이게 하거나, 그 밖에 인민을 속이는 온갖 야비한 방법을 사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잔꾀만으로는, 어쩌다가 자기 주변에 우매한 군중을 모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국가를 수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만들어 놓은 부질없는 일들도 그의 죽음과 동시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얄팍한 속임수로는 일시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종속되고 있는 유태인의 법률이나, 10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세계의 반을 지배해온 이스마일의 아들의 법률 등은 아직까지도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위대성을 자랑하고 있다. 오만한 철학이나 맹목적인 당파심은 이들을 운수 좋은 사기꾼으로 생각하지만, 진정한 정치가는 이들의 제도에서 모든 항구적인 제도에서 나타나는 위대하고 강력한 천재를 발견하고 찬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워버튼이 내린 결론처럼, 우리들 사이에 정치와 종교가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국가의 생성기에 있어서는 정치가 종교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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