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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이성의 빅뱅시대를 열다
데카트르, 신앙을 밀어내고 이성을 세우다 논리는 우리 시대의 최고의 재판관이다. 정답을 놓고 논쟁이 벌어질 때면 가장 논리적인 쪽이 승리를 거둔다. 갈등일 생겼을 때도 그렇다. 사람들은 이치에 닿고 합리적은 주장에 손을 들어주게 마련이다. 과학 기술 분야로 가면 논리는 더더욱 중요해진다. 앞뒤가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이론은 '비과학적인'주장으로 치부되어 버리고 만다. 이처럼 이치에 맞음, 곧 합리성은 현대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고 100여 년 전만 해도 합리성은 지금 같이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었다. 우리 조상들은 옛 관습과 성현들의 가르침을 논리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가 공자의 가르침을 읊고 있는 훈장에게 "그건 아닙니다. 이치로 따져 보자면.....
2022.05.02 -
로마 제국을 지탱한 국가 철학의 힘
철학이 국가를 만든다 명문 집안에는 무시할 수 없는 나름의 가풍(家風)이 있다. 올곧은 어른이 계시고 윤리가 바로 서 있는 집안을 어떤 풍파에도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역사상 강대했던 제국들은 대개 뚜렷한 도덕적 기준과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중국 대륙에 중화(中華)문명의 뿌리를 내린 한(漢) 제국에는 유교라는 굳건한 국가 철학이 있었고, 무려 500년이라는 세월을 버틴 조선 왕조에는 성리학(性理學)이라는 윤리 질서가 있었다. 그 어떤 나라 보다도 튼튼하고 견실했던 로마 제국은 무려 1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금의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 지역 전체를 통치했다. 하지만 로마도 처음에는 "지성에서는 그리스 인보다도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2022.05.02 -
자본의 멱살을 거머쥔 공산주의
세상을 떠도는 '공산주의' 유령 20세기는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시대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 세계가 마르크스를 영웅으로 받드는 국가들과 '악의 화신'으로 여기는 나라들로 나뉘어 대립했으니 말이다. 냉정(cold war)이라 불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대립은 마르크스를 따르느냐 부정하느냐를 놓고 생긴 갈등이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3분의 1은 마르크스 사상이 곧 '진리'였던 세상에서 살았고, 그의 가르침대로 세상을 바꾸려 노력했다. 이는 역사상 어떤 종교나 사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 인류가 관여하다시피 한 이 엄청난 '사유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1990년, 구소련의 몰락을 시작으로 마르크스를 추종하던 국가들은 하나하나 자..
2022.05.01 -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준 사상들
1. 로크의 '빈 서판 이론' 프랑스 혁명에는 '정치 선진국' 영국의 철학자였던 로크의 사상이 큰 영향을 끼쳤다. 사회 계약설뿐만 아니라, '빈 서판(tabla rasa)'으로 알려진 그의 인식론은 귀족들의 권위를 무너뜨리는데 기여했다. 로크의 '빈 서판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태어날 때는 빈 칠판과 같다. 귀족들이 평민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이는 무언가 특별한 재능이나 덕성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더 나은 환경속에서 더 좋은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교육을 통해 동등해 질 수 있다. 이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할 수 있는 주요한 논거가 되었다. 2. 루소의 사회 계약론 루소(Jean J. Rousseau, 1712~1778)의 도 혁명 과정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공포정치..
2022.04.30 -
왕권신수설 vs 사회계약설
왕권신수설 사회계약설 아무리 시대 여건이 뒷받침해 준다 해도 철학이 없다면 혁명은 일어날 수 없다. 철학은 폭동과 혁명을 구분시켜 주는 중요한 잣대다. 이념 없이 폭발한 시위와 반발은 그 순간이 지나면 이내 잠잠해진다. 하지만 철학은 불만에 차 들고일어난 시민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할 지에 대한 로드 맵(앞으로의 계획이나 전략이 담긴 구상도, 청사진)을 제공한다. 그래서 폭력을 새로운 세상을 여는 동력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면 18세기 프랑스를 변혁시킨 철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 학자들은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끼친 사상으로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철학을 꼽는다. 하지만 그 당시 권력자들은 통치의 근거를 이른바 '왕권신수설'에서 찾았다. 왕권신수설의 대표주자 격인 필머(..
2022.04.29 -
십자군 전쟁 그 이후
시대속으로-십자군 전쟁이 남긴 것 최근 학계에서는 십자군이라는 용어를 단순히 '성지 회복'을 넘어서 유럽 기독교와 이교도와의 분쟁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쓰는 경향이 있다. 13세기에 이단, 교회의 적에 대한 십자군 운동은 성지 회복을 위한 원정만큼이나 빈번하게 일어났다. 당시 에스파냐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려는 '레콘키스타'운동은 기독교들 사이에서 성지 회복과 같은 거룩한 전쟁으로 여겨졌다. 십자군 전쟁 결과, 유럽은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먼저 많은 귀족과 기사들이 전사하여 수가 줄어들었다. 이는 왕권 강화로 이어져서 근대 국가 형성에 기여했다. 반면, 잇따른 원정의 실패로 교황의 권위는 크게 떨어졌다. 1309년에는 교황이 프랑스 왕에게 쫓겨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