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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전국시대의 혼란을 잠재우다
형벌로 형벌을 없애다 법가의 성공 사례로는 무엇보다 진나라를 꼽을 수 있다. 진나라는 원래 대륙 서북쪽에 처박혀 있던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제국으로 크게 성장한 데는 상앙(기원전390?~338?, 본명 공손앙)의 공이 컸다. 상앙은 원래 지나라 사람이 아니었다. 진나라 효공(기원전 381?~기원전 338)이 초현령을 거쳐 발굴한 인재로, 위나라 사람이었다. 초현령이란 국가를 이끌 인물을 선발하기 위한 일종의 '국제 인재 공모전'이라 보면 될 듯하다. 그는 법가 특유의 과감한 정책으로 효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법가라는 말 자체 에서 느낄 수 있듯, 법가 사상가들은 하나같이 '엄격한 법 적용'을 강조했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이란 사자성어로 알려진 다음 일화는 상앙의..
2022.05.08 -
노자
전쟁과 함께 시작된 위대한 철학 인류 문명은 전쟁을 거치면서 발전했다. 비행기와 자동차가 일반화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사용으로 널리 쓰이고 나서부터이며, 인터넷도 원래는 미국 국방성의 연락 체계로 개발된 것이었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도 큰 전쟁이 한번 일어나면 획기적인 발명품들이 속속 탄생했다. 전쟁은 죽느냐 사느냐 게임이다. 사람들은 그야말로 '목숨 걸고' 살 방도를 찾게 마련이고, 그 가운데서 평화로울 때는 꿈도 못 꿨던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지곤 했다. 이 점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사상은 보통 혼란한 시기에 생겨났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활발하게 철학 논의가 이루어졌던 시대는 대륙 전체가 갈라져 싸웠던 춘추 전국 시대다. 이 혼란기에 유가. 법가. 묵가. 도가 ..
2022.05.07 -
니체, 철학하는 의사
철학하는 의사 니체는 스스로를 '철학하는 의사'라고 부르곤 했다. 확실히 니체의 철학에는 선입견을 부수고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힘이 있다. 나치 정권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열패감에 젖은 독일 국민에게 니체를 '정신적 영양제'로 주입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니체의 철학은 유럽의 3등 시민에 지나지 않았던 독일인들을 순식간에 '제3제국을 이끄는 위대한 아리안 족의 후예"로 거듭나게 할 만큼 강렬한 자극제였다. 그렇다면 니체는 무기력에 빠진 우리 소시민에게도 삶의 열망을 일깨워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니체를 통해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거리에 즐비한 '낙타형 인간'들이다. 낙타는 불평을 모른다. 주어진 먹이를 먹고 가라는 길을 갈 뿐이다. 이 동물은 '삶은 고난'이라고 여기며 지난..
2022.05.06 -
니체
허무주의 그리고 신의 죽음 니체가 살았던 19세기는 발전과 혼란이 함께하던 시기로, 한편에서는 자본주의가 맹렬한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산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돈의 위력은 하루가 다르게 사회 곳곳을 지배해 갔다. 자본가들은 이렇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국가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의 삶에 쓸데없이 끼어들면 안 된다." 이들의 생각은 한마디로 '자유주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 발전에서 소외된 자들이 힘을 모았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착취당하려고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평등한 세상을 꿈꿨다. 노동하는 다수가 주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그것이 진정 제대로 된 세상일 터였다. 이러한 주장은 184..
2022.05.05 -
논리실증주의
과학의 시녀가 된 철학 철학의 문제는 시대의 고민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교회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의 철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놓고 심각한 논쟁을 벌이곤 했다. 이성이 트이기 시작한 서양 근세에는 어떻게 해야 오류 없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지가 철학자들의 주된 고민이었다. 갈릴레이의 지동설에서 볼 수 있듯,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수록 기독교 성경과 과학은 끊임없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은 지식인지, 이 둘을 조화시킬 방법은 없는지가 철학자의 주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19세기가 접어들자 과학의 승리를 분명해졌다. 이제 신앙이나 관습은 더 이상 과학 지식보다 우월할 수 없었다. 과학적 접근과 해결은 가장 논리적이고 올바른 방법으로 여겨졌다. 세상은 과학 기술을 등에 업고 눈부시게 발전하고..
2022.05.04 -
조선 실학과 정약용의 삶
실학자 정약용 원래 성리한은 현실적인 학문이었다. 고려 말, 성리학을 이땅에 '수입'한 안향(安珦,1243~1306)은 이렇게 말한다. ".......성인의 도(道)는 일용(日用:날마다 현실에 적용하는) 논리일 뿐이다. 저 불교신자들은 부모를 버리고 가정을 떠나서 인간 윤리를 없애고 도의를 저버리니 오랑캐의 한 종류다."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다. 불교는 현실을 버리고 깨달음을 좇으라고 이른다. 반면, 공자의 유교는 현실을 잘 가꾸라고 가르친다. 예법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릇 학문이란 "현실에 통해야 하며 유용해야 한다. 실학(實學)은 이런 유학의 본래 가르침에 충실하려는 움직이었다. 실학은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말에서 왔다.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이다. 이는 원래 ..
2022.05.03